요즘 황혼이혼, 졸혼(卒婚), 별거와 같은 단어를 자주 들을 수 있다. 부부가 오래 살다보니까 별별 일이 생기는 것이다. 기대수명이 70세 정도일 때만 해도 결혼 후 길어야 40년 안팎 살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는 게 평균적인 삶이었다. 하지만 기대수명이 82세를 넘어서 100세 시대로 진입하면서 결혼 생활도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예전과는 달리 결혼 생활을 50년, 길게는 60년 이상 하는 부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자녀들은 다 키워서 내보내고 손자·손녀를 보면서 오순도순 살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지만 말처럼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은퇴는 은퇴하는 남편만의 사건이 아니다. 아내는 물론 온 가족이 함께 겪으면서 풀어 나가야 할 일이다./ 조선일보 DB>
결혼 생활의 변곡점으로는 자녀의 출생, 교육과 결혼, 배우자의 은퇴 시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변곡점들은 부부 두 사람이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자녀가 태어난 것을 큰 축복으로 보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원치 않는 출생이라며 구박하거나 심지어 내치기도 한다. 우리 인생의 한 획을 긍정적으로 쳐다보면 한없이 긍정적이지만 부정적으로 쳐다보면 한없이 부정적으로 되는 것이다.
은퇴를 한번 들여다보자. 먼저 최근에 들은 이야기 한 토막. 공기업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이가 퇴직 후의 무상함과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술로 세월을 보내기 시작했다. 부인이 보다 못해 남편의 가까운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결국 병이 나서 몇 년 만에 죽고 말았다. 문상을 다녀온 필자의 친구가 술 한 잔 앞에 놓고 울면서 전해주는 이야기에 필자를 포함한 친구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은퇴 후 정신적 혼란 주변 사람들에게 표출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은퇴 아닌가. 누구나 은퇴하는 것이고 더욱이 요즘 세상에 공기업에서 정년까지 다녔으면 그나마 행복한 은퇴라고 할 수 있는데 왜 그랬을까.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은퇴라는 큰 변화에 적응을 못했을 거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은퇴와 함께 이것저것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모를 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본인의 성격과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여기서 생각해볼 단어가 ‘은퇴증후군(Retirement Syndrome)’과 ‘은퇴남편증후군(Retired Husband Syndrome)’이다. 은퇴증후군은 은퇴한 사람들이 겪는 은퇴 전후의 정신적 혼란이나 분노, 절망감 등이 배우자 또는 자녀 등 주변 사람들에게 표출되는 현상을 말한다. 은퇴남편증후군은 은퇴한 남편들이 쏟아내는 은퇴증후군의 직접적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아내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지거나 이유 없이 아프게 되는 현상이다. 일본에서는 은퇴남편증후군이 이미 1990년대 초반 스트레스성 정신질환으로 분류될 정도로 사회적 이슈가 됐다.
이 같은 은퇴증후군과 은퇴남편증후군을 잘 다스리지 못한 결과는 이혼, 별거, 졸혼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60세 이상의 이혼 상담이 2004년 250건에서 2014년 1125건으로 4.5배나 늘었다. 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을 20년 이상 유지하다가 이혼하는 황혼이혼도 급속히 늘어나 2016년 기준 전체 이혼의 30%를 넘고 있다.
일본에서 시작한 새로운 풍속이라는 졸혼은 혼인 관계는 유지하면서도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념이다. 등을 거의 돌리고 사는 별거와는 달리 졸혼은 부부가 한 달에 한두 번 만나거나 집안 대소사에 함께 참석하는 등 나름 부부로서의 최소한의 연결고리와 의무는 가지는 형태다.
은퇴는 은퇴하는 남편만의 사건이 아니라 그 아내는 물론 온 가족이 함께 겪으면서 안고 가야 할 대사건이다. 따라서 은퇴하는 당사자의 은퇴증후군은 물론, 이를 안고 가야 할 가족들의 은퇴남편증후군을 잘 다스려야 이후 살아갈 30~40년이 행복할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은퇴한 사람은 은퇴한 사람대로 은퇴한 사람의 배우자와 가족들은 또 그들대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자는 것이다.
가족들도 은퇴한 가장 보듬는 노력 필요
30년 이상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갈 곳이 없고 명함까지 없어진 사람의 마음을 누가 이해해 줄 것인가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나 말고도 은퇴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오히려 은퇴는 이제부터 그간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돌봐준 가족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쓰라는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요즘으로 치면 흙수저로 태어나 이만하면 열심히 일한 대가를 잘 받지 않았는가. 좀 더 크게 보면 지지리도 못살던 우리 경제가 이만큼 발전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 세대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하지 않은가.
아내와 자녀들도 남편 또는 아버지의 은퇴가 가져올 후폭풍을 이해하고 보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은퇴한 남편(아버지)의 입장이 돼 보라.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특히 원치 않는 은퇴를 했을 경우 실망감과 분노는 본인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때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면서도 남편(아버지)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한마디라도 부드럽게 배려하는 말을 해보라.
은퇴 후 6개월이면 ‘마포백수’ 즉, 마누라도 포기한 백수가 된다는 우스개가 있다. 왜 마누라도 포기하는가. 왜 은퇴한 사람이 백수인가. 은퇴한 후 함께 살아갈 날이 30~40년인데 고작 6개월 만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은퇴한 사람은 백수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과 나라 경제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물러난 사람일 뿐이다. 은퇴자는 앞으로도 한참을 더 존경받으며 살아야 할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다.
결혼 생활의 변곡점으로는 자녀의 출생, 교육과 결혼, 배우자의 은퇴 시기 등을 들 수 있다. 이 같은 변곡점들은 부부 두 사람이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자녀가 태어난 것을 큰 축복으로 보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원치 않는 출생이라며 구박하거나 심지어 내치기도 한다. 우리 인생의 한 획을 긍정적으로 쳐다보면 한없이 긍정적이지만 부정적으로 쳐다보면 한없이 부정적으로 되는 것이다.
은퇴를 한번 들여다보자. 먼저 최근에 들은 이야기 한 토막. 공기업에서 30년 넘게 근무하다 정년퇴직한 이가 퇴직 후의 무상함과 절망감을 이기지 못해 술로 세월을 보내기 시작했다. 부인이 보다 못해 남편의 가까운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결국 병이 나서 몇 년 만에 죽고 말았다. 문상을 다녀온 필자의 친구가 술 한 잔 앞에 놓고 울면서 전해주는 이야기에 필자를 포함한 친구들은 눈시울을 붉혔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은퇴 후 정신적 혼란 주변 사람들에게 표출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것이 은퇴 아닌가. 누구나 은퇴하는 것이고 더욱이 요즘 세상에 공기업에서 정년까지 다녔으면 그나마 행복한 은퇴라고 할 수 있는데 왜 그랬을까.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은퇴라는 큰 변화에 적응을 못했을 거라고 추측할 수밖에 없다. 은퇴와 함께 이것저것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모를 만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본인의 성격과 주변 환경이 따라주지 못한 게 아니었을까.
여기서 생각해볼 단어가 ‘은퇴증후군(Retirement Syndrome)’과 ‘은퇴남편증후군(Retired Husband Syndrome)’이다. 은퇴증후군은 은퇴한 사람들이 겪는 은퇴 전후의 정신적 혼란이나 분노, 절망감 등이 배우자 또는 자녀 등 주변 사람들에게 표출되는 현상을 말한다. 은퇴남편증후군은 은퇴한 남편들이 쏟아내는 은퇴증후군의 직접적인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아내들의 신경이 날카로워지거나 이유 없이 아프게 되는 현상이다. 일본에서는 은퇴남편증후군이 이미 1990년대 초반 스트레스성 정신질환으로 분류될 정도로 사회적 이슈가 됐다.
이 같은 은퇴증후군과 은퇴남편증후군을 잘 다스리지 못한 결과는 이혼, 별거, 졸혼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60세 이상의 이혼 상담이 2004년 250건에서 2014년 1125건으로 4.5배나 늘었다. 뿐만 아니라 결혼 생활을 20년 이상 유지하다가 이혼하는 황혼이혼도 급속히 늘어나 2016년 기준 전체 이혼의 30%를 넘고 있다.
일본에서 시작한 새로운 풍속이라는 졸혼은 혼인 관계는 유지하면서도 부부가 서로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개념이다. 등을 거의 돌리고 사는 별거와는 달리 졸혼은 부부가 한 달에 한두 번 만나거나 집안 대소사에 함께 참석하는 등 나름 부부로서의 최소한의 연결고리와 의무는 가지는 형태다.
은퇴는 은퇴하는 남편만의 사건이 아니라 그 아내는 물론 온 가족이 함께 겪으면서 안고 가야 할 대사건이다. 따라서 은퇴하는 당사자의 은퇴증후군은 물론, 이를 안고 가야 할 가족들의 은퇴남편증후군을 잘 다스려야 이후 살아갈 30~40년이 행복할 수 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점은 서로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은퇴한 사람은 은퇴한 사람대로 은퇴한 사람의 배우자와 가족들은 또 그들대로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자는 것이다.
가족들도 은퇴한 가장 보듬는 노력 필요
30년 이상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갈 곳이 없고 명함까지 없어진 사람의 마음을 누가 이해해 줄 것인가라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 나 말고도 은퇴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오히려 은퇴는 이제부터 그간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뒤에서 묵묵히 돌봐준 가족을 위해 시간과 돈을 쓰라는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요즘으로 치면 흙수저로 태어나 이만하면 열심히 일한 대가를 잘 받지 않았는가. 좀 더 크게 보면 지지리도 못살던 우리 경제가 이만큼 발전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 세대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하지 않은가.
아내와 자녀들도 남편 또는 아버지의 은퇴가 가져올 후폭풍을 이해하고 보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은퇴한 남편(아버지)의 입장이 돼 보라.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특히 원치 않는 은퇴를 했을 경우 실망감과 분노는 본인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이때 평소와 다름없이 행동하면서도 남편(아버지)의 변화를 세심하게 관찰하면서 한마디라도 부드럽게 배려하는 말을 해보라.
은퇴 후 6개월이면 ‘마포백수’ 즉, 마누라도 포기한 백수가 된다는 우스개가 있다. 왜 마누라도 포기하는가. 왜 은퇴한 사람이 백수인가. 은퇴한 후 함께 살아갈 날이 30~40년인데 고작 6개월 만에 포기해서는 안 된다. 은퇴한 사람은 백수가 아니라 자신과 가족과 나라 경제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물러난 사람일 뿐이다. 은퇴자는 앞으로도 한참을 더 존경받으며 살아야 할 우리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다.